[특집기획6] ‘손흥민’ 국가대표 주장에게 필요한 것은 '경기력'만일까?
북중미월드컵 32강 탈락 참사 막을 수 있었다(?)
국민의 분노가 이처럼 클 수는 없다
이번 북중미 48개국 월드컵에서 국가대표팀의 참담한 성적에 대해 깊은 아쉬움과 차오르는 분노를 금하기 어렵다. 그러다 보니 2년 여 전 홍명보를 감독으로 선임하려할 때 당시(지금도 그렇지만) 한국 축구에서 가장 영향력이 컸던 손흥민 선수의 행동에 큰 아쉬움이 남는다.
1. 홍명보 감독 선임 당시, 손흥민의 침묵이 아쉽다
개인적으로는 손흥민 정도의 영향력을 가진 주장이라면 당시 조금 더 적극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전달했더라면 결과가 달라졌을 가능성도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2년 전 쯤 홍명보 감독 선임 당시 온 나라가 반대 여론으로 들끓었을 때 당시 홍 감독은 상황을 의식해 해외파 주축 선수들(손흥민, 이강인, 김민재 등)을 찾아다니며 해외파 선수들과 의견을 나눴다는 이야기가 여러 보도를 통해 전해지기도 했습니다. 손흥민과 같은 영향력의 선수가 ‘온 국민이 반대하다시피 하는 것 같은데 감독님이 여론을 살펴서 결심해 주시길 바랍니다.’라고 한 만디만 했어도 오늘날의 참사는 비켜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우리나라 축구의 중심이자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손흥민이 이렇듯 진심담긴 말을 하거나, 조금 더 분명하게 자신의 의견을 전달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래서 홍명보가 사퇴하는 계기라도 됐으면 지금 같은 참사는 없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입니다.
김수환 추기경의 한마디가 사회적 무게를 갖듯 손흥민의 위상이라면 홍 감독 선임을 막고 새로운 길을 열 수 있었을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다.
손흥민이 그 당시 홍명보에게 했다고 전해지는 말은 ‘선수는 주어진 자리에서 치선을 다 하는게 역할이다’ ‘감독 선임은 협회의 결정이다’ ‘누가 오든 팀으로 잘 준비하겠다’ 정도의 원론적 멘트 정도였으니 너무 안타깝다는 것이다.
2. '홍명보' 결과로 나타난 역대급 월드컵 참사
본선 진출 실패나 다름없는 탈락이다. 우수한 유럽파 선수들을 보유하고도 북중미 월드컵 32강 진출조차 실패한 것은 과거로 치면 본선 무대 구경도 못한 것과 다름없는 역대급 참사입니다.
전술적 무능과 안일함이 너무도 돋보이는 경기들이었습니다. 상대 팀의 분위기와 성향이 매번 다른데도 매 경기 똑같은 전술을 고집하다가 패배했습니다. 전술을 바꾸며 최선을 다해 치른 패배도 아니기에 용납하기 어렵습니다.
경기력은 주장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하지만 때로는 경기장 밖에서의 한마디가 수많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기도 한다. 그래서 국가대표 주장에게 필요한 것은 뛰어난 실력만이 아니라, 필요한 순간 자신의 소신을 말할 수 있는 용기와 책임감이 아닐까.
선수지만 필요한 순간 멋진 ‘선수 외적인 역할’을 했던 선수들
경기장에서 공만 잘 찬 게 아니라, 자기 나라의 축구 역사와 문화, 더 나아가 사회적 흐름까지 완전히 바꿔버린 세계적인 선수들을 몇 명 소개해 볼까합니다.
1. 요한 크루이프 (네덜란드) – ‘현대 축구의 뼈대를 만들다’
네덜란드 축구를 넘어 전 세계 축구를 현대적 패러다임으로 바꾼 인물입니다.
1970년대에 ‘토탈 풋볼(Total Football)’이라는 전술을 경기장에서 직접 지휘했습니다. 골키퍼를 제외한 모든 선수가 포지션에 얽매이지 않고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이 전술은 네덜란드를 세계 축구의 중심지로 만들었습니다.
문화적으로는 은퇴 후 감독으로서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이 철학을 이식했고, 이것은 오늘날 우리가 아는 ‘티키타카’와 패스 축구의 기반이 되었습니다. 오늘날 네덜란드와 스페인 축구의 유소년 시스템과 플레이 스타일은 모두 크루이프의 유산 위에 세워졌습니다.
2. 디디에 드록바 (코트디부아르) – ‘전쟁을 멈춘 축구 영웅’
전쟁 중이던 조국의 비극을 축구라는 공통분모로 멈춰 세운, 영화 같은 이야기의 주인공입니다.
2005년, 코트디부아르가 사상 첫 월드컵 본선 진출을 확정 지은 직후였는데 당시 코트디부아르는 오랜 내전으로 피비린내 나는 상황이었죠. 드록바는 생방송 카메라 앞에서 무릎을 꿇고 마이크를 잡았습니다. ‘전쟁을 멈춰 주십시오. 미안합니다. 우리 다 함께 축제를 즐겨야 하니 제발 무기들을 내려놓아 주십시오.’
이 진심 어린 호소 이후 거짓말처럼 1주일간 총성이 멈췄고, 실제로 평화 협정으로 이어지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한 선수의 영향력이 국가의 비극을 막고 평화의 문화를 심어준 역사적인 순간이 아닐 수 없습니다.
3. 소크라테스 (브라질) – ‘축구로 민주주의를 외치다’
의사 자격증을 가진 독특한 이력의 브라질 축구 전설로, 군부 독재 시절 축구를 저항의 도구로 삼았습니다.
1980년대 브라질이 군부 독재 치하에 있을 때, 그는 소속 팀인 코린치앙스에서 ‘코린치앙스 민주주의(Democracia Corintiana)’ 운동을 주도했습니다. 구단의 모든 결정(선수 영입, 훈련 시간 등)을 감독 한 명이 아닌 청소부부터 스타 선수까지 모두가 참여하는 1인 1표 투표로 결정하는 파격적인 시스템이었습니다.
이들은 유니폼 뒷면에 ‘15일에 투표합시다’ 같은 정치적 메시지를 인쇄하고 경기에 나섰습니다. 군부 독재에 숨죽여 있던 국민들에게 축구장이라는 안전한 공간을 통해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직접 보여주고, 브라질의 민주화 운동에 거대한 불을 지폈습니다.
4. 펠레 (브라질) – ‘축구를 예술로, 브라질을 세계로’
펠레 이전의 브라질은 축구를 잘하는 나라 중 하나였지만, 펠레 이후의 브라질은 ‘축구 그 자체’가 되었습니다.
1958년, 겨우 17세의 나이로 브라질에 첫 월드컵 우승을 안기며 전 세계에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이후 월드컵 3회 우승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습니다.
당시 브라질은 열등감과 인종 차별 등으로 사회적 분위기가 어두웠습니다. 하지만 펠레는 특유의 창의적이고 리드미컬한 플레이로 브라질 축구 고유의 스타일인 ‘조가 보니토(Joga Bonito, 아름다운 축구)’ 문화를 정착시켰습니다. 펠레 덕분에 축구는 브라질 국민들의 가장 큰 자부심이자 국가 정체성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이들은 경기장 안에서의 승리를 넘어, 자신의 영향력을 통해 국가의 시스템을 혁신하거나 사회적 메시지를 던지며 축구를 단순한 ‘스포츠’에서 ‘역사’로 격상시켰습니다.
배울 점이 많은 정말 훌륭한 스타들입니다. 부러우면 진다는데 이런 선수들을 보유한 나라들이 정말로 부럽습니다.
의견이나 댓글 있으시면 부탁드립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