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예능 분석 04] 연애 예능 속 '빌런'은 왜 탄생할까? 시청자가 분노하는 이유

 연애 방송 시청률 경쟁이 낳은 부작용 3가지

거대한 콘텐츠 산업이 된 연애 프로그램

 연애 프로그램이 우후죽순 늘어나다 보니, 방송사들의 시청률 및 화제성 경쟁은 점입가경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시청자들의 눈길을 한순간이라도 더 잡아두기 위해 제작진들이 열을 내는 경쟁 전략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치명적인 부작용들은 가히 상상 초월 수준입니다. 

1. 시청률을 잡기 위해 쓰는 제작진의 전략

 마라탕 맛 같은 '악마의 편집'과 자극적인 예고편

 출연자의 말이나 행동을 앞뒤 맥락 없이 잘라 붙여 오해를 사게 만들거나, 다음 주 예고편에 대단한 싸움이나 파국이 일어날 것처럼 편집합니다. 정작 본 방송을 보면 별일 아닌 경우가 많지만, 시청자를 붙잡아두는 가장 흔한 수법입니다. 좋게 봐줘서 그렇지 이것은 시청자의 기대를 과도하게 자극하는 편집이 될 것이라는 비판도 있습니다.

 자극적인 '마라맛' 포맷과 이색 조건 도입

 단순한 처녀 총각의 만남을 넘어 돌싱, 전 연인(X), 모태솔로 등 자극적인 서사를 가진 출연자들을 적절히 혼합 적용합니다. 최근에는 '돌싱 여성과 모태솔로 남성'을 매칭하는 식의 파격적인 조건까지 등장하며 포맷 자체가 점점 더 매운맛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이러다가는 앞으로 상상하지 않았던 , 더 자극적인 설정이 등장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습니다.

 특이한 스펙이나 '비주얼 끝판왕' 섭외

 의사, 변호사, 대기업은 기본이고 연예인 뺨치는 외모의 인플루언서나 미인대회 출신을 대거 섭외합니다. 초반에 시각적 화제성을 몰고 와야 유튜브 짤(Shorts)이나 SNS로 빠르게 퍼지기 때문입니다
즉 시선을 끌 수 있는 요소라면 뭐든지 적극적으로 활용하겠다는 전략을 취하고 있습니다.

 2. 시청률 경쟁이 낳은 3대 부작용

 제작비 대비 고효율을 노리는 연애 예능이지만, 과열된 경쟁 때문에 심각한 사회적·도덕적 리스크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하나 '일반인 출연자'를 향한 무차별적 악플과 신상 털기

 연예인은 소속사가 보호해 주거나 어느 정도 멘탈 관리가 되지만, 일반인 출연자들은 방송 후 쏟아지는 비난에 무방비로 노출됩니다. 악마의 편집이나 사소한 말실수 하나로 '국민 빌런'이 되어 직장 생활이 불가능해지거나 악플에 시각적·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며 고소전을 벌이는 경우가 발생했습니다. 어떤 일을 하든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경우들이 있겠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 감당되어야 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나 고질적인 '출연자 도덕성 검증 실패' 리스크

 정부에서 인사 검증을 꼼꼼히 한다 해도 문제 발생되는 경우가 많은데 방송사에서의 검증이 그렇지 못한지 화제성 있는 인물을 급하게 섭외하려다 보니 사전 검증에 구멍이 뚫리곤 합니다. 사생활 논란이 방송이후 불거지면서 제작진의 사전검증이 충분했는지에 대한 지적도 이어졌습니다. 학폭이나 불륜 등 다양한 의혹이 제기 되며 프로그램 전체의 신뢰도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하나 진정성 오염 (홍보·협찬을 위한 '빚 좋은 개살구')

 진심으로 짝을 찾으러 나오는 사람보다, 방송을 발판 삼아 인스타 팔로워를 늘리거나 본인의 쇼핑몰, 가게를 홍보하려는 '출연 목적의 변질'이 심해졌습니다. 결국 "진짜 사랑을 찾는 리얼리티"라는 본질은 사라지고, 시청자들은 속았다는 배신감을 느끼게 됩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가져다 주는 모순일까요 아니면 해당 개인의 문제일까요.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결론적으로 시청률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방송사는 '더 자극적인 편집'을 하고, 시청자는 '더 매서운 칼날(악플)'을 휘두르며, 출연자는 '거짓 진정성'으로 무장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입니다.

  너 보다 내가 더 더 더..

 ​ 어릴 적 텔레비전 앞을 지키며 보았던 옛날 코미디 프로그램의 한 장면이 지금 이 순간 생각 나는 것은 왜 일까요?

  당시에는 '개그'라는 세련된 외래어 대신 '코미디'라는 정겨운 이름으로 불리던 시절이었는데 그 시절 코미디의 단골 소재 중 하나는 '복수극'의 형태를 띤 몸 개그였습니다.

따귀 맞은 코미디, 브레이크 없는 자본주의

마주 보는 두 명의 코미디언이  서로를 웃기기 위해 장난스레 뺨을 툭 한 대 때리면 맞은 쪽은 억울했는지 방금 맞은 것보다 조금 더 세게 받아칩니다. 감정이 상한 저쪽은 질세라 더 강한 타격을 날리죠. 툭 치던 장난으로 시작된 '주거니 받거니'는 결국 이성을 잃은 난투극이나 말도 안 되는 파괴적인 폭력으로 끝을 맺는 다는 코미디였고 객석은 배를 잡고 웃었지만, 그 안에는 인간의 보복 심리와 에스컬레이션(단계적 확대)의 씁쓸한 생리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득 깨닫는 게 있습니다. 20, 30년 전 무대 위에서 보았던 그 '점입가경의 따귀 때리기'가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자본주의 시장의 경쟁 생태계와 너무 나도 닮아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무한 경쟁의 굴레에 갇히는 우리 자화상

 자본주의 시장에서 경쟁은 태생적으로 필연적이라 남보다 조금 더 나아야, 조금 더 자극적이어야 대중의 시선을 붙잡을 수 있게 돼 있습니다. 정보와 콘텐츠가 넘쳐 나는 바야흐로 '주목 경제(Attention Economy)'의 시대인 것이지요. 대중의 시선은 곧 신뢰이자, 수익이며, 성공의 보증수표가 됩니다. 그러다 보니 시장의 참여자들은 옆 사람이 툭 치면 나는 팍 쳐야 하는 무한 경쟁의 굴레에 갇히게 된다.

 이 딜레마가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곳이 바로 방송과 미디어의 '시청률 경쟁'입니다. 피땀 흘려 제작한 방송이라면 당연히 많은 이들이 봐주어야 마땅한데 하지만 남들과 똑같은 평범함으로는 눈길조차 받지 못하는 현실 속에서, 제작진은 자꾸만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더 세게'를 외치게 되고야 맙니다.

 평범한 일상은 자극적인 갈등으로 포장되고, 알 권리는 관음증적인 폭로로 변질된다. 본질보다 말초적인 재미를 쫓다 보니, 어느새 주객이 전도되어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진 기형적인 콘텐츠들이 쏟아지는 현실이 되었습니다.

 문제는 "과연 어디까지 서로를 더 세게 때려야 하는가"입니다. 이 브레이크 없는 질주를 제어할 마땅한 수단이 없습니다. 자유 시장 경제 체제에서 국가나 제도가 나서서 "여기까지만 매운맛을 내라"며 인위적인 상한선을 그어줄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그 끝은 어디일까요?

 결국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엔진을 단 경쟁 체제는, 마치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처럼 끝간데 모르게 폭주하고 마는 것입니다. 아우토반 위를 달리는 멋진 화려한 모습 끝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누구도 장담하지 못합니다.

 이 무한한 상승 곡선이 앞으로 10, 20, 혹은 30년 동안 이어진다면 그 끝에 마주할 결과는 과연 무엇일까요. 더 이상 자극을 자극으로 느끼지 못하는 불감증의 사회일까, 아니면 서로를 치받다 모두가 파멸해 버린 황폐한 시장의 잔해가 될까요.

 파국을 향해 달리는 열차를 뻔히 바라보면서도 내릴 수 없는 승객이 된 것처럼, 이 과열의 과정을 지켜보는 마음은 그저 안타깝고 복잡할 뿐이다. '더 세게 때리기'의 악순환을 끊어낼 우리 사회의 집단적 지혜와 멈춤의 미학이 그 어느 때보다 간절한 시점이라 아니할 수 없겠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한 가요? 댓글 바랍니다.

To be continued

연애예능 5회가 궁금하면 여기 링크

'참교육'이 중요한 이유

혹시 '녹내장'이 궁금하면 여기 링크